검은 꽃

책의 배경은 구한말의 조선.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대이지만 내용은 흔하지 않았다. 좋은 일자리와 미래를 엿보고 배를타고 태평양을 건너 멕시코라는 나라로 이주하는 조선인들 (내용과는 별개로 멕시코로 떠난 한국인들의 이민사는 실제 있었던 일이다.)

농사같은 것은 해본적도 없는 양반들부터, 주교의 명을 불복하고 도망친 신부, 내시 악사, 군인들과 농민들이 배에 뒤섞여 희망을 찾아 도착했던 곳은 생지옥이었다.

대륙식민회사에 속아 멕시코의 유카탄에서 에네켄이라는 작물을 밤낮없이 할당량을 채워야하는 취업사기이자 4년동안 노예 계약을 하게된 것이다.

그 안에서 집단을 이루며 적응하던 중 끝이 보이지 않던 계약이 끝을 향해갔다. 조선인들은 멕시코 전역으로 뿔뿔이 흩어져 부랑하는 신세가 된다. 나라를 잃어 정착할 곳을 상실한 완벽하게 뿌리 뽑힌 자로써, 돌아갈 조국조차 사라져 버린 그들은 지상의 어느 곳에서도 환대받을 수 없는 완전한 타자가 된다.

그와중에 불우한 운명은 부랑조차 용인하지 않는다. 멕시코에는 혁명이 몰아닥치고, 그들은 그 와중에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면서 죽임과 죽음을 주고받는 신세가 된다.

책의 플롯이 이전에 읽었던 위화의 '원청'과 유사한 느낌을 받았다. 군상극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삶의 부조리함에서의 인간의 생명력이 얼마나 위대한지, 인간이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보여주지만 그 부조리에 절망하게 되는 모습에서 말이다.

호기롭게 도망친 이정이 선교사의 조언대로 미국에서 성공하여 연수에게 다시 돌아올까 싶었지만 혁명군의 용병으로 살아가게 되는 예상치 못한 서사까지 역사책을 읽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김영하 작가의 모든 책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단 하나만 추천한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