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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 또 김영하 작가의 소설

책을 다읽고 책 끝 부분에 간단한 해설이 있었다. 거기에 '이 소설이 잘 읽힌다면 잘못읽은 것이다' 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전에 읽었던 작품과는 달리 술술 읽혔고 알츠하이머를 겪는 노인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1인칭 시점, 빠른 전개. 그런데 잘못 읽었다니 결말을 보면 이게 다 치매 노인의 망상이라고? 가 전부였는데 말이다.

반야심경에 담긴 종교적 메시지가 있는 건가? 해서 찾아봤는데, 반야심경 구절은 '공'사상, 즉 비어있지 않고 유무의 경계를 여의고 중도의 이치를 직관한 것을 말한다고 한다. 김병수가 마지막에 반야심경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는게 아니라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것.

김병수의 기억은 까마득한 심연으로 떨어져 한 점 티끌이 된다. 두 눈이 멀어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오이디푸스처럼,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공간에서 김병수는 “나머지 노래는 내세에서 들으리.”라고 다짐한다. 그러나 “지금의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내세가 있다 한들 그게 어떻게 나일 수 있으랴.”

뭐랄까 독서라는 취미를 제대로 영유하고 즐기려면 많이 읽고 생각해야 한다는 마음을 갖게되는 책이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부족해서 작가의 의도나 책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것 같다. 특히나 문학이..

그 난해함에서 재미를 찾아가는게 독서의 즐거움 아닐까나

뭐 그런걸 떠나서 하나의 스릴러, 피카레스크 장르로 봐도 신선한 소재임은 틀림없다. (이제보니 영화화도 되었구나) 살인하는 장면을 직접 묘사하지 않아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주인공이 살인마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자극적이지도 않고, 그렇게 거북함도 없었다. 김영하 작가 책중에 이렇게 잘 읽히는 책이 드물다는데 다른 작품도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