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서울의 봄
최근에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가 유행하고 있다. 시대의 배경은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전두환 군부가 군대를 동원해 한국에 찾아올 민주화의 씨앗을 짓밟아버린 시기이다. 사실 근현대사(뿐만 아니라 한국사)를 배운지 좀 오래되어서 가물가물했지만 영화를 보고 다시 한 번 공부하게 되었다.
서울의 봄이 불러온 민주화를 향한 열기는 광주에서도 불어왔는데, 그 뒤로는 우리가 알고 있는 5.18 민주항쟁의 시작이다. 흔히 말하는 '소년이 온다'의 프리퀄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 이후
이 시대를 배경으로 여러 등장인물이 민주 항쟁을 각자의 시선으로 서술한 군상극의 형태를 띈다.
상무관에서 군인들에 의해 목숨을 잃은 자들의 가족을 찾아주는 일을 도와주는 소년 '동호'부터 군인들의 손에 죽은 동호의 친구 '정대', 불온 서적을 발간하다는 출판사에서 일하다가 경찰에 잡히게 된 '은숙'까지, 사실을 기반으로 한 소설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읽어서 책을 읽는 내내 분을 삭힐 수 없었다.
3장의 주인공인 '은숙'은 상무관에서 동호와 일했었는데, 시간이 지나 한 출판사에서 일하게 된다.
책을 출판하기 전, 검열과에서는 번역자가 수배자라는 이유로 은숙을 몰아새우고 일곱 대의 뺨을 때린다. 은숙은 이정도 일은 아무 것도 아니라 생각하며 뺨을 한 대씩 잊어가리라 마음먹는다. 하지만 마지막 일곱 번째 뺨은, 입을 아주 살짝만 달싹거리며 무언에 가까운 저항연극을 보면서 오히려 가슴에 더욱 깊이 새긴다. 절대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항거하는 은숙의 눈물이 빛난다.
5장의 주인공 '선주' 광주에서의 증언을 요청받는 200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데, 반대로 그녀는 과거에서 멀어지려 한다. 광주에서의 빨간 기억, 수많은 고문, 그때문에 순탄치 않았던 자신의 삶. 선주는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더 안전한 곳으로 도망쳤다. 작가가 말하는 '아무리 도망치고 숨어도 고통의 기억은 몸속에 머무르고 생명을 공격한다.'
살아남은 이들은 살아남았다는 그 수치심 속에서 광주를 잊지 못한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은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즐 수 있습니까?
성찰
시위에 참여했던 대학생들을 생각해보면,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렸을 것이다. 그들이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잃은 것, 아니 단순히 1980년 5월 광주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경험한 것들은 한 사람이 겪기에 너무나 가혹한 일들이다. 학교에서 배운 역사 시간 보다, '소년이 온다'는 그 참상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아직도 상무관 계단에서는 피냄새와 가지말라는 부모님들의 외침이 들리는 듯 하다.
그 날, 광주에 있던 수많은 동호에게 말하고 싶다. 문득 고요하고 평화롭게 하루를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