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_2023-08-27_21-38-13

악의 평범성

⋯ 죽음을 앞두고 그는 장례 연설에서 사용되는 상투어를 생각해 냈다. 교수대에서 그의 기억은 그에게 마지막 속임수를 부렸던 것이다. ⋯ 이는 마치 이 마지막 순간에 그가 인간의 사악함 속에서 이루어진 이 오랜 과정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교훈을 요약하고 있는 듯했다. 두려운 교훈, 즉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저자인 한나 아렌트는 몰라도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은 어디선가 한번 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바로 이 책에서 나온 개념이자 부제(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로 이는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평범하게 여기는 일이 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독일계 유대인으로 나치 독일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뒤에,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치의 전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에 참관하여 느낀 바를 정리한 회고록이자 시사 논평을 작성했다. 나치의 전범과 유대인, 왠지 무슨 내용이 나올지 예상되지 않는가?

하지만 내가 생각한 형식의 책은 아니었다. 사실 부제를 보면 윤리 철학서같이 보이지만, 재판을 참관하고 연재한 기사를 모아놓은 시사 컬럼이다.

검사는 법정에서 방청객을 힐끔꺼리거나, 허세보다 더 심한 연극적인 행동을 하기도 했는데…

그래서 책을 보면 위와 같은 법정에 있는 인물들의 행동같은 묘사들이 대부분이다. 부제에 낚이지 말라고 먼저 알린다.

다시 내용으로 돌아와 유대인을 대상으로 홀로코스트를 자행한 전범들이 뭐가 평범하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유대인 학살의 주범인 아이히만이 사악하고 악마같은 사람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아렌트는 재판을 보면서 오히려 친절하고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재판 내내 아이히만은 저질렀던 악행들에 대해 본인은 그저 상관이 지시한 사항을 이행했을 뿐이라고 일관했다. 학살을 죄가 아닌 공무로 본 것이다.

참 싸이코패스같은 발언같아 보이지만 이처럼 평범하고 선한 사람이 스스로 악한 의도를 품지 않더라도 당연히 여기며 행하는 일들 중 무언가는 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반복해서 설명한다.

이러한 내용을 책으로 발간한 뒤에 아렌트에게 역사학자들의 수많은 반론이 제기되었다. 절대 평범한 관료도 아니었을 뿐더러 그의 범죄는 평범함으로 희석시킬 수 없는 행위였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또한 유대계 사람들이 홀로코스트에 대해 어떻게 분노하지 않느냐라는 비난에 휩싸이기도 했다. 당연한 반응이기도 하다. 당시 광복 이후에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가 일본의 전범에게 평범하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니까.

사실 아렌트가 철학자임을 생각해보면 아이히만을 옹호하거나 변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누구던 악을 저지를 수 있다는 주장을 아이히만을 예로 든 것일 뿐이었을 것이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사형에 찬성했던 사람이었다. 철학자의 관점에서 아이히만은 유대인과 같은 지구에 살지 않기 위한 행동을 했다고 판단하고 때문에 사형을 언도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재판을 유대인 차원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등장할 수 있는 인류의 범죄에 대한 선례를 남기기 위해 국제법정으로 처리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전범에 대한 옹호가 아닌 것이다. 검사의 연극적인 태도를 비판하면서도 결국 마지막은 아이히만을 향한 복수심 가득한 선고로 마무리하기도 하고..

이 책을 읽어야하는 이유는 '악의 평범성'에 대한 통찰을 얻기위함이 아니라 아렌트와 유대인들이 나치 독일로부터 물려받은 폭력에 대한 믿음을 찾기 위해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