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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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입소문을 많이 탄 책이어서, 예약 대출을 하고 손까지 오는데 좀 걸린 책이다. 내용이 길진 않아서 몇 시간만에 읽었지만.

20세기 초 미국의 대표적인 생물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생애를 다루는데, 단순한 자서전과 달리 저자인 룰루 밀러가 과학자인 그의 삶에 물음을 던지며 풀어나가며 전개된다.

조던은 어류를 연구했으며, 발견하여 명명한 물고기는 200여 종이 넘었다. 그는 학자로써 연구를 시작해 인디아나 대학 학장을 거쳐 스탠포드 대학 학장을 역임하며 위대한 미국인의 반열에 들게 되는데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과학자의 전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행적에 반해, 평소에 맘에 들어하지 않았던 스탠포드 대학교 이사장을 독살했다는 의심을 받게된다. 또한 휴가로 방문했던 알프스의 아오스타에 방문한 이후부터 우생학에 관심을 가져, 우생학을 미국에 도입하여 그 영향으로 버지니아에 정신박약자 수용소가 건설되어 강제 불임 시술이 시행되는 결과까지 초래했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미국의 인종 개선 재단의 위원이 되었고, 이는 아리아인이 만이 위대하다며 인종을 청소하려 했던 나치의 행동에 버금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도 최근에 와서는 조던을 새롭게 평가하자는 관점이 등장하여 미국 곳곳에 뿌리내린 그의 이름이 지워지고 있으며, 저자는 이 관점을 중심으로 하여 탄생한 철학적 전기라고 보면 될 것같다.

저자는 자신이 조던의 삶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간단하게 소개한다.

저자의 아버지는 과학자로, 아버지에게 인생의 의미를 묻는다.

“의미는 없어. 신도 없어. 내세도 운명도, 어떤 계획도 없어. 그런 게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믿지 마라. 그런 것들은 모두 사람들이 이 모든 게 아무 의미도 없고 자신도 의미가 없다는 무시무시한 감정에 맞서 자신을 달래기 위해 상상해낸 것일 뿐이니까.”

결국, 이 자연 세계 속에 남는 것은 혼돈뿐이다. 이런 혼돈 속에 어떤 존재도 다른 존재보다 더 탁월하거나 완전하지 않다. 그러므로 저자의 아버지에 의하면 “혼돈만이 우리의 유일한 지배자이며”, 우리는 “한 마리 개미와 전혀 다를 게 없다.”

이렇게 혼돈이 지배한다면, 우리의 삶이란 무엇이겠는가? 니체가 세계의 혼돈 속에서 삶의 허무를 말했듯이 저자의 아버지 역시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 너 좋은 대로 살아.”

저자가 어릴 때 부딪혔던 것은 바로 혼돈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저자는 아버지가 말한 것처럼 마음대로 살아갈 수는 없다. 그 결과는 비극적인 자기파괴이기 때문

결국 저자는 냉혹한 세상에서 잠시 ‘웃음의 잔물결’을 던져주는 희극배우를 만나 살림을 차렸다. 어느 날 바닷가에서 저자가 소녀를 유혹했다고 고소되면서, 남편도 떠나고 저자의 삶은 파괴되고 만다.

저자는 고통 속에서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과학자 조던의 삶을 연구하게 된다.

조던의 갑작스런 타락(?)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저자가 방문했던 알프스의 이오스타는 정신/육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안식처같은 도시였다.

가톨릭교회가 장애때문에 가족에게 거부당한 사람들을 아오스타로 불러들여 의식주를 해결해주었다.

이를 본 조던은 "거위보다 지능이낮고 돼지보다 품위가 떨어지는", "진정한 공포의 공간"이라 묘사했다.

조던은 이 후 우생학에 빠지게 되었고 우생학을 미국으로 전파하여 1920년대에는 미국이 독일보다 먼저 우생학의 온상이 되었다.

조던의 영향 때문이었다. 버지니아 수용소나, 인종 개선 재단은 모두 그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결과이다.

초기에 다윈의 진화론에 영향을 받기도 한 조던이 끝내 그의 스승인 아가시의 목적 진화론에 빠지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저자가 보기에는 조던이 은 우생학에 빠져든 것은 자연의 무질서 앞에 조던이 느낀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자연이 혼돈 속에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과학이 아무리 이 자연 속에 질서를 세우려 하더라도 그것은 마치 대지진 앞에서 무너진 조던의 표본실과 마찬가지의 운명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혼돈의 세계 속에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

저자는 조던이 어류의 세계에서 세웠던 질서를 무너뜨리겠다고 결단을 내린다.

분지학을 연구하는 캐럴 계숙 윤의 도움으로 물고기라는 존재 즉 어류라는 분류 항목이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것은 마치 산에 사는 생물을 모두 산류로 분류할 수 없듯이 또는 공중에 나는 생물을 모두 조류로 분류할 수 없듯이 물에 산다고 해서 모두 어류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실제 어류라고 말해지는 폐어, 송어, 멍게, 가자미 등은 동일한 과에 속하지 않는다.

이름을 붙이면 실재한다는 생각은 관념론 철학의 근본 주장이다. 물고기라는 말이 있어서 사람들은 물고기가 마치 실재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제목처럼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물고기라는 분류명을 제거해 버린다. 이로써 조던이 목숨을 걸고 확립하려면 물고기의 존재는 사라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