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인사
작별인사
김영하 작가의 소설은 '살인자의 기억법',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딱 이렇게 두 권 읽어봤었는데, '작별인사'라는 제목만 보고 뭔가 이별을 이야기하는 책인가보다하고 책을 집었다.
결론적으로 맞았다! 그런데 이게 SF 소설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심지어 디스토피아를 주제로 한 소설이었다. 김영하 작가가 이런 장르까지? 디스토피아는 조지 오웰의 '1984'나 힉슬리의 '멋진 신세계'같은 책은 물론이고, 월-E 같은 애니메이션에서 많이 본 장르인데 진부하다면 진부할 수도 있었다. 김영하 작가는 어떻게 이야기를 풀었을까 (참고로 책 읽기 전에 아무런 정보없이 김영하 작가의 소설인 것만 인지한채로 책을 들었다.)
주인공인 '철이'는 최첨단 테크놀러지 회사 '휴먼 매터스'에서 근무하고 있는 '최진수' 박사 연구원의 아들로, 온실 속의 화초처럼 학교를 가지 않고 아버지에게 홈스쿨링으로 교육받으며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철이는 미등록 휴머노이드를 잡아들이는 정부의 단속에 잡혀 캡슐에 실려가고, 인간은 철이는 영문을 모른채 사람과 유사한 휴머노이드를 수용하는 수용소에 갇히면서 이야기는 고조된다.
수용소를 탈출하고, 철이는 '달마'라는 자에 의해 인간과 흡사한 휴머노이드라는 것이 밝혀진다. 철이가 인간인지 휴머노이드인지 종잡을 수 없도록 숨겨진 반전이 아니었다. 그보다 철이가 아빠와 함께 살았던 '인간 세계' 바깥의 폐기된 존재(달마를 비롯)들을 만나며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를 확장해간다.
디스토피아 SF의 결말은 보통 매트릭스와 같이 인류가 개발한 인공지능과 기계의 역습으로 인류가 절멸하는 결과를 낳지만, 달마가 예견한대로 인간보다 더 윤리적인 인공지능은 일부러 인간을 공격하지 않고, 인간이 스스로 멸종의 길을 택하는 길을 밟는다.
철이는 인류가 모두 멸망하고, 인간을 닮은 유일한 존재가 되었다. 마지막에는 동물에게 물리적인 습격을 받아 훼손되는데, 철이는 휴머노이드이기 때문에 모든 기억을 네트워크에 정신을 백업시켜 불멸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철이는 인간으로서 죽음을 선택하고 유한한 삶과 작별인사하며 결말을 맞는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인가?
'이기적 유전자'에 따르면, 인간의 유전 정보도 프로그래밍으로 따지면 코드에 불과하다. 인간은 그 유전정보를 전달하는 매개체일뿐이다.
공각기동대에서 나오는 '인형사'라는 캐릭터는 고스트 해킹범으로 미국인으로 추정되었지만, 알고보니 인공 지능 의식으로 자신을 AI가 아니라 정보의 바다에서 발생한 생명체이며 정치적 망명을 희망하는 내용이 있다.
인간들이 인형사는 자기보존 프로그램에 불과하다라고 반박하자 유전자 또한 코딩에 불과하고, 생명력이란 것도 인간이 정의할 수 없는데, 인형사가 망명을 요청하지 못할 존재인지 묻는다.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논리적으로 대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인형사의 일침에 작중 인물도 물론이고, 나조차 인형사가 생명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만한 이유를 즉각 떠올리기는 쉽지 않았다.
작가는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지 고민을 해보도록 메시지를 던진게 아닐까?